경매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강남도 ‘싸늘’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대출 규제와 12·3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 본격화로 부동산 경매시장이 움츠러들고 있다. 경매로 넘어가는 물건은 대폭 늘어난 반면, 매수심리 위축으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경매물건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불패라던 강남의 대장단지조차 유찰되는 모습을 보였다.
27일 법원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전국의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집합상가 등) 임의경매개시 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5만1850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3만5150건)에 견주어보면 48% 급증한 수준이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을 3개월 이상 갚지 못했을 때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 차원에서 담보로 한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보통 은행 등 금융기관이 채권자일 때 임의경매가 활용되며, 강제경매와 달리 별도의 재판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법원에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경매물건이 급증한 주된 배경으로 '영끌족'의 이자 부담 영향을 꼽는다. 2021년 부동산 호황기 당시 담보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매입했다가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한계상황에 직면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경매시장 물건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택시장에서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의 아파트조차 수요가 꺾여 낙찰 사례는 줄어들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12월 서울 아파트 경매는 총 244건 진행됐는데, 이 중 103건만 낙찰되며 낙찰률은 42.2%에 그쳤다. 이는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낙찰률인 48.2%에 비해 6%포인트 가량의 큰 낙폭을 보인 것이다. 낙찰가율도 한 달 전 94.9%보다 3.0%포인트 떨어진 91.9%로 집계됐다. 응찰자수 역시 6.21명으로 한달 전 대비 대비 0.4명 줄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불황기에도 불패라던 강남권 대단지 아파트조차 유찰되는 사례가 나온 점이다. 이달 중순 경매로 나온 송파구 대장주인 잠실엘스 전용 119㎡는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 단지의 소재지인 송파구 잠실동은 지난 2021년 6월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 다만 매수의 경위가 경매를 통한 낙찰인 경우에 한해서만 토지거래허가지역이더라도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지 않아 전·월세를 낀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하다. 초기 투자금액이 줄어드는 주택 매수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물건에 대한 눈길이 싸늘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토지거래허가구역인 대치동의 강남구 대치아이파크 전용 120㎡도 계엄령 직후인 이달 5일 경매를 진행했으나 새주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감정가가 38억9000만원으로 40억원대 수준인 같은 평형대 시세 대비 1억원 가량 저렴했고, 마찬가지로 실거주 의무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 확산으로 응찰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경매시장의 위축된 분위기도 되살아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탄핵정국 불확실성에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 등 대출규제까지 겹쳐 주택매수심리가 위축됐다”며 “시장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내년 초에도 경매시장의 거래절벽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