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마주한 계절

유진은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를 바라봤다. 학교 옆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차가운 가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고요한 모습은 유진의 하루를 설레게 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멀찍이서 바라보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유진은 행복했다. 사랑이라는 건 늘 가까이서 속삭여야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어느 날, 유진은 벤치 옆에 떨어진 작은 메모를 발견했다.
“가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그게 너라면 좋겠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 그가 나를 알기라도 하는 걸까?
그날 이후, 유진은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작은 편지와 함께 벤치에 사과를 하나 남겼다.
“책 읽는 당신을 매일 보며 설렜어요. 언젠가 당신의 이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다음 날, 벤치에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내일 이 시간, 내 이름을 말해줄게.”
유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된 시간을 기다렸다. 바람이 잔잔히 불던 오후, 그가 벤치에 앉아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려움은 따스한 그의 미소에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날, 유진은 알게 되었다. 짝사랑도 언젠가는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